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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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간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산통이란 저주를 받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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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고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얻고 남자는 죽도록 일하는 고통을 얻었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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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이 여자를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 .....
야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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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 성서 창세기 3장에서 발췌」


출산이 힘들어진 이유는 직립 보행으로 골반이 벌어지는 데 한계가 있고 태아가 중력의 영향으로 아래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궁경부가 매우 강하게 닫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의 두뇌 용적이 커지면서 당연히 신생아의 두뇌 용적도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선악과는 두뇌가 커지는 방향으로의 진화, 노동이라는 벌은 직립 보행과 자유로운 손 사용을 상징하고, 산통도 이와 함께 심해졌음을 비유하는 것 같다.


산도는 좁고 자궁경부가 단단하기 때문에 아기가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키우면 아기가 너무 커져서 낳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따라서 최적의 크기가 되기 전에 아기가 태어난다. 다른 영장류 아기들과 비교해 보면, 사람 아기는 출산 후 약 100일이 되어야 다른 영장류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와 비슷한 성숙도가 된다. 즉 사람 아기는 백일잔치할 때쯤이 되어야 침팬지 신생아와 비슷하게 성숙한다. 침팬지나 고릴라와 비교하면 사람 아기들은 전부 다 이른둥이인 셈이다. 원래는 자궁 속에 있었어야 할 시기 (그래서 네 번째 삼분기, 출산 후 3개월, 임신 4기, fourth trimester라고도 부른다)인데 이르게 나온 셈이라, 육아에 손이 많이 가고 아기는 엄마 품을 계속 그리워하고 모유 수유도 잦은 간격으로 해야 한다. 백일이 되니 갑자기 육아가 편해지는 ‘백일의 기적’이란 말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제마는 태양인(太陽人)은 폐대간소(肺大而肝小)하며 머리가 크고 어깨가 넓고 허리와 엉덩이는 작고 약한 편이라고 밝혔고, 특히 태양인 여성은 자궁이 약해서 아이를 낳기 어렵다고 썼다. 머리가 큰 체형의 태양인 여성이 임신한 태아 역시 엄마를 닮아 머리와 어깨가 큰 편일 가능성이 높고, 그에 반해 본인의 골반은 좁으니 이중으로 난산의 조건을 갖추었을 테다. 태양인의 비율이 낮아 가임기 태양인 여성을 많이 관찰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이제마가 탁월한 사고 실험을 전개했던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그렇다고 산통이 인간에게만 독보적인가? 그렇지 않다. 진통은 자궁 수축 과정에서 느끼는데, 이 자궁 수축은 태아의 크기가 작아도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만큼, 아니 인간 이상으로 산도와 태아의 크기가 불일치하는 종도 있다.


점박이하이에나는 여성과 남성의 외형이 같다(!) 여성 하이에나는 음핵이 외부로 길게 자라나서 음경과 같은 모습 (pseudopenis)을 띤다. 음핵의 개구부는 2.2cm의 직경인데, 하이에나 신생아의 직경은 6~7cm이다. 40~86kg의 엄마 하이에나가 1.5kg 정도의 아기를 낳는데, 말하자면 ‘고추’가 찢어지면서 낳는다! 산통은 최대 48시간 지속되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첫 출산 때 9~18%의 엄마 하이에나가 사망하고 25%의 신생아 하이에나만 살아남는다. 경산모는 상황이 좀 더 나아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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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만 출산이 힘든 것이 아니다. 진통 올림픽에서 조류계 대표주자는 뉴질랜드의 키위새이다. 사진이 설명을 대신한다. 따라서 인간만 산통을 겪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산통이 동물 중 가장 심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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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인간의 산통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동물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기 얼굴이 땅을 향한 채 나오기 때문에 산모는 아기 목이 꺾일 위험 때문에 스스로 아기를 받을 수가 없다. 반드시 산파의 존재가 필요하다. 아기를 받을 필요도 없이 아기가 성숙한 채로 나오는 많은 포유류나, 해부학적으로 혼자서 아기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영장류와 다르다.


사회성이 강한 고래나 돌고래도 역시 산파가 필요하다. 아기 돌고래는 태어나자마자 물 위로 들어 올려져 숨을 쉬어야 하는데, 이때 여러 돌고래가 같이 아기를 물 위로 밀어 올려 준다.


기독교 성서에서 출산의 고통만 강조하고 출산에서 드러나는 협동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저술 과정에서 남성 저자들만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