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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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참기름 바른 강아지로 호랑이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을까? (부제: 물땡땡이로 개구리는 잡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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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금강산에 호랑이가 많이 살아서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꾀를 하나 냈다. 자기 강아지에게 참기름을 먹이고 몸에 발랐다. 호랑이가 나타나 강아지를 잡아먹었지만, 참기름을 바른 강아지는 미끄러워 호랑이 뒷구멍으로 나왔다. 그렇게 여러 마리가 강아지를 잡아먹으려다가 강아지를 묶어놓은 밧줄에 주렁주렁 엉키게 되었다. 그 사람은 호랑이의 가죽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 [1].


위 이야기가 <줄줄이 꿴 호랑이>, <강아지 꿀꺽, 호랑이 줄줄> 등의 그림 동화책으로도 다뤄졌으니 접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호랑이의 구강, 식도, 위장, 소장, 대장을 모두 통과해서 강아지가 그대로 나왔다는 것은 물론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소화관을 그대로 통과해 살아나오는 모티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꽤 인기 있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에서 남작이 기름진 베이컨을 줄에 묶어 던졌더니 오리가 삼켰다가 그대로 싸고 그걸 그다음 오리가 또 삼키고 싸고 하여, 오리 떼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참기름 강아지 이야기와 거의 똑같다. 또 남작 본인이 거대 바다 동물에게 삼켜졌다가 무사히 나오는 이야기가 두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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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줄이 꿴 호랑이> 책의 삽화. 권문희. 사계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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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책의 삽화. 고트프리트 뷔르거.


구약성서 요나서에서도 요나는 바다에서 큰 물살이 (어류)에 의해 통째로 삼켜져 사흘 밤낮을 그 뱃속에서 지냈다. 그 물살이는 사흘 후 요나를 뱉어냈다고 한다. 피노키오와 제페토는 심지어 고래 배 속에서 한참 거주하다 나온다. 하지만 입안에 잠깐 머금어졌다 뱉어진다면 모를까, 뱃속에 들어갔다가 며칠 후 살아나올 수는 없다. 온몸이 짓이겨질 테고, 소화액에 몸이 녹을 테고, 무엇보다 산소도 없다. (다만, 사람이 해양 대형동물의 입안에 잠깐 들어갔다 살아나왔다면, 그것은 고래상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래상어 입에는 만져지는 이빨이 없어 사람이 다치지 않을 수 있고 고래상어가 사람처럼 큰 물체는 뱉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고래상어가 가끔 위 내용물을 비워내는데, 이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요나서 같은 전설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그림 형제의 <빨간 망토>에서도 늑대가 할머니와 빨간 망토를 통째로 삼켜, 배를 가르니 둘이 살아 나왔다. 역시 그림 형제의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에서는 엄마 염소가 늑대의 배를 갈라 아기 염소들을 구해낸다. 심지어 늑대 배 속에 다시 자갈을 채워 꿰맨 다음 물에 빠뜨려 죽이기까지 한다.


강아지나 염소가 호랑이나 늑대의 소화관을 통과해서 살아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고래 배 속에서 살아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자연에서는 실제로 일어난다. 아마 이 모습을 관찰하고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 전설이 된 것이 아닐까?


논에 사는 수생 딱정벌레 콩알물땡땡이 (Regimbartia attenuata)는 개구리에게 잡아먹힌 뒤 몇 시간 뒤에 항문으로 버젓이 살아나온다. 스기우라 신지 (Shinji Sugiura)의 논문 Active escape of prey from predator vent via the digestive tract (Current biology, Volume 30, Issue 15, 3 August 2020, Pages R867-R868)에 따르면, 참개구리 (Pelophylax nigromaculatus), 청개구리 (Hyla japonica), 옴개구리 (Glandirana rugosa), 히로시마늪개구리 (Fejervarya kawamurai), 다루마개구리 (Pelophylax porosus) 등에게 잡아먹힌 뒤, 1~4시간 만에 절반 이상~전부 살아나온 것이 관찰되었다. 나오자마자 활발하게 움직이고 헤엄을 쳤다. 아래 영상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


개구리는 먹이를 죽이지 않고 삼키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개구리의 소화계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아마 콩알물땡땡이는 튼튼한 외골격계로 소화액을 버텨 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탈출하기 위해서는 개구리의 괄약근이 열려야 하기 때문에, 콩알물땡땡이가 개구리의 후장 (대장~항문)을 자극하여 배변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통상 개구리가 삼킨 먹이를 소화시켜 배변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 만에 콩알물땡땡이가 나왔기 때문에, 다리를 사용해서 능동적으로 개구리의 소화관을 기어 나와 항문으로 탈출하는 것 같다. 콩알물땡땡이의 다리를 끈적한 왁스로 고정한 뒤 같은 실험을 했더니, 모든 콩알물땡땡이가 24시간이 지난 뒤 사망하여 소화된 채로 나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새에게 삼켜진 조개의 14.3~16.4%가 살아남은 상태로 대변으로 나오고, 껍데기에 구멍이 나지 않은 상태로 어류에게 삼켜진 달팽이는 40% 정도 살아남은 상태로 배출된다. 따라서 콩알물땡땡이보다는 생존율이 낮지만,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콩알물땡땡이를 삼킨 개구리나, 조개를 삼킨 새나, 달팽이를 삼킨 물살이는 ‘왜 배가 부른데 배가 고프지?’라고 느낄 것 같다. 우리가 칼로리가 거의 없는 곤약이나 우뭇가사리 묵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먹어봤자 소화가 전혀 안 되고 그대로 배출된다. (이와 관련된 옛이야기도 있다. 한양에 과거시험 보러 가던 가난한 선비가 곤약 (또는 우뭇가사리 묵)을 먹고 길가에 대변을 봤는데, 시험 후 고향에 돌아오던 길에 웬 곤약이 있길래 주워 먹었다는...)


결론: 참기름 강아지에 줄을 묶어서 호랑이를 잡을 수는 없지만, 콩알물땡땡이에 실을 매어 개구리를 잡을 수는 있다. 또는 조개에 실을 묶어 새를 잡을 수는 있다!



References


[1] 경상도 대구·부산 지역의 전설: 참기름 바른 강아지로 호랑이 잡은 이야기. 지역N문화.


[2]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960982220308423#mmc2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