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헤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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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기억할 것이다. 이 캠페인으로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루게릭병은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어 의료계에서는 도전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내 최초의 루게릭 센터가 있는 한방병원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바로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 희귀난치성 신경근육질환(루게릭)센터이다. 이곳에서 센터장이신 침구의학과 김성철 교수님을 비롯해 차은혜 선생님(침구의학과 레지던트 2년 차)과 이성진 선생님(침구의학과 레지던트 1년 차)을 뵐 수 있었다. 오늘도 환자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해 치료에 몰두하시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1. 김성철 교수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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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69.jpg 한방 최초 루게릭 센터

먼저 루게릭 센터는 어떤 곳인지 여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희귀난치성 신경근육질환센터입니다. 희귀난치성 근육질환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루게릭병이죠. 루게릭병뿐만 아니라 샤르코마리투스(Charcot Marie Tooth disease, CMT), 다계통위축증(Multiple System Atrophy, MSA), 근디스트로피(Progressive Muscular Dystrophy, PMD) 등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센터에는 루게릭병 환자 20여 명을 수용하는 병실과 별도의 병동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운동신경성 질환은 결국 호흡 능력을 저하시키므로 호흡량을 측정하는 진단 기구들이 있고, 응급상황을 대비해 호흡 보조기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양방과 협진도 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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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69.jpg 한방치료의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도전

교수님은 루게릭병을 침 치료로 접근한 연구자로 매우 유명하시다. 어떤 계기로 루게릭병을 치료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교수님은 동료의 성과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의식이 생겼다고 했다. “그 당시 상지대 침구과에 있는 권기록 교수가 봉침 치료 효과를 발표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봉침의 효과를 보면서 뭔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치료에 뛰어들면서 만만치 않은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침 치료가 계속 효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분명 효과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뭔가 가이드를 제시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교수님은 치료 기전을 밝히는 게 관건이라며 치료체계를 잡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8년간(보건복지부 과제 36억)의 연구 중 4년 차로 반환점을 맡고 있으며 루게릭병 치료를 위한 새로운 한약제재와 약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mall69.jpg 체계적인 치료를 위하여

이어서 교수님은 지금까지 해오신 연구결과와 치료 기전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모니터 화면에 자료를 띄워서 차근차근 알려주시는 모습에서 치료에 대한 교수님의 열정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교수님은 봉한 학설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치료에 이용했다. “중추신경계는 혈액-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이라는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효과적인 약물이라도 잘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봉한소체는 B.B.B를 통과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봉한 학설은 1960년대에 김봉한 박사가 발표한 것으로 해부·조직학적으로 경락과 경혈을 설명한 것이다. 교수님 설명에 따르면 경혈 위치에 있는 봉한소체에 약침을 주입하게 되면 약침액이 봉한관을 따라 뇌혈류장벽을 통과하고 중추신경에 도달하여 결국 상처 난 부위에 재생의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교수님께서 진료하시는 모습에서 피부와 천부 근막층 여러 군데를 약침으로 자극하시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교수님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항 글루타메이트인 리루졸보다 수명을 훨씬 더 연장시키는 치료 한약제재(메카신)와 재생약침(슈퍼키)을 개발하고 있고, 서울대 강경선 교수와 함께 제대혈 줄기세포를 경혈에 주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루게릭병 진단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압타머(Aptamer) 기술을 이용한 조기 검사키트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학술지에 사암침 치료가 루게릭병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셨다. 끊임없는 연구 성과들만 보더라도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교수님의 치열한 고민과 치료에 대한 확신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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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69.jpg Field를 벗어나지 마라!

끝으로 한의대생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이런 난치성 분야에 도전을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 한의학은 양방에서의 한계와 문제점에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이 둘은 서로 견제하고 상호 협조하면서 발전해야 하며 이는 결국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 일입니다.” 또한, 의학기술의 최종 목표는 효과는 크면서도 안전성이 담보되는 치료라고 하셨다. 이어서 교수님은 치료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환자를 찾아가는 한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원장실에서 의사의 권위만 세우고 있으면서 환자의 치료결과는 외면한 채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는 한의사가 되지 말고 종일 환자의 치료 현장을 지키면서 환자에게 고통을 준 원인이 무엇이고 치료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한 명의 환자라도 얼마나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치료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결국 환자로부터 존경받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레지던트 선생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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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69.jpg 침구의학과, 그곳이 궁금하다!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상냥하게 맞이해주신 레지던트 선생님들 덕분에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침구의학과에 주로 어떤 환자분이 오시는지 물어보았다. “근골격계 질환 환자분들이 많이 오시는 편이에요. 교수님께서 루게릭병을 주로 다루시니까 전국에서 루게릭병 환자들도 오시고요. 꼭 루게릭병이 아니더라도 각종 희귀난치성 질환(근육영양장애, 케네디병, 인간광우병) 환자도 오시고 가끔 중풍 환자도 오세요.”


침구의학과를 선택한 계기도 궁금했다. 차은혜 선생님은 다양한 질환을 가진 환자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을 우선 꼽으셨다. “교수님께서 약침과 도침(刀針)치료를 많이 하시니까 그걸 경험하기 위한 것도 있었어요.” 이성진 선생님은 학부생 때부터 침구의학과에 관심이 있다고 하셨다. “학부생 시절에 아는 한의원에 가서 참관하게 됐는데 거기 한의사분이 침구의학과 전공의셨어요. 그분 영향을 받아서 선택한 점이 컸어요.”


선생님들께서는 침구의학과 분위기는 어떤지 살짝 알려달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웃으셨다. “우선 화기애애해요. 병원 교수님이라고 하면 권위적일 것 같은데 교수님은 권위와는 거리가 머세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회식을 좋아하셔서 거의 매주 한 번씩은 회식을 하고요. 말씀을 되게 재밌게 많이 해주시고 술을 잘 안 드셔서 식사 끝나면 카페 가서 차도 마시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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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69.jpg 의국 생활, 환자와의 소중한 인연

광주한방병원 침구의학과는 1과, 2과로 나누어져 있다. 레지던트 1년 차 때는 병동환자관리를 주로 담당한다. 환자에게 X-ray, MRI, 혈액검사 결과와 치료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교수님이 치료하실 때 보조를 맡기도 한다. 2년 차 때는 박만용 과장님이 계시는 침구의학 2과에서 외래환자를 본다. 침구의학 2과에서는 주로 교통사고 환자가 많다고 한다. 3년 차 때는 김성철 교수님이 계신 침구의학 1과에서 외래 업무를 본다. 초진차트를 쓰고 교수님 옆에서 진료 시 하시는 것을 보기도 한다. 당연히 루게릭병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저희 과는 수요일 아침마다 컨퍼런스를 해요. 루게릭병에 대한 논문도 같이 보고 입원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어떤 치료방법이 효과적인지 알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의국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선생님들은 환자분들과 마주한 경험이 가장 크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분들은 대부분 증상이 심하거나 통증 부위도 여러 군데라 치료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병원에서는 다양한 치료방법을 쓴다고 한다. “교수님께서 주로 약침과 도침치료를 하시는데 아무래도 일반 한의원보다 치료 강도가 센 편이기도 해요. 약침은 오공약침, 봉침을 주로 쓰세요. 디스크 환자의 경우 약침 치료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보람을 느끼기도 하죠.”


긴장하는 순간들도 있다. 루게릭병 환자의 경우 응급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간혹 호흡이 안 좋은 환자도 계시고, 보행이 좀 어려우신 분이 걷다가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이때 머리를 부딪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검사를 해봐야 하니까 긴장할 때가 있죠.” 루게릭병 환자분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안타까울 때도 있다. “루게릭병이 진행되는 병이다 보니까 1년, 2년 진행되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요. 일 년 전에는 말씀도 잘하시고 잘 걸어 다니시던 분이 지금은 말씀도 못 하시고 식사하기도 힘들어지시고 거의 휠체어에 의지해 가만히만 계시니까, 그럴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지금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향으로 한의학 치료를 진행하고 그걸 기대하고 있어요. 더 좋은 한의학적 치료법이 하루빨리 개발되면 좋겠어요.”


small69.jpg 후배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이라면 수련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에 관해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선생님들은 4년간의 수련의 과정이 힘들 수도 있지만 다양한 치료법을 접하고 많은 환자들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과정을 추천한다고 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면 침구의학과에서 많이 배워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양방지식을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점도 장점이라고 했다. “여기는 협진체제니까 양방과장님들도 세 분 계세요. 양방교수님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요. 저희가 X-ray, MRI,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설명을 해야 하니까 그런 지식을 쌓는 데는 도움이 많이 돼요.” 또한, 일반 한의원보다 중증환자를 더 많이 볼 수 있고 입원환자관리와 대처방법도 배울 수 있고 환자가 왔을 때 한방 쪽에서 볼 수 있는 환자인지, 양방으로 보내야 하는 환자인지 구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 수련의 경쟁률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한 해에 인턴 지원할 때 2~3명씩은 떨어져요. 국시성적, 학부성적, 면접 모두 두루 중요한 것 같아요. 간혹 면접 때 바뀌는 경우도 좀 있고요.” 그렇다면 선생님들은 수련의를 마치고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질문했다. “보통 수련의들은 한방병원 쪽으로 많이 취직하는 편이에요. 개원은 나중에 하더라도 한방병원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선배로서 한의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부탁했다. 차은혜 선생님은 “최종목표가 개원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위해 수련의 과정을 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루게릭병의 경우도 책에서 증상을 읽어본 것과 직접 환자를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르거든요.”라고 했다. 이성진 선생님은 “저는 학교 다닐 때 양방과목을 다른 과목에 비해 소홀히 한 부분이 있었는데 양방과목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환자가 왔을 때 내가 볼 수 있는 환자인지, 아니면 다른 데로 보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거든요.”라고 전했다. 두 분 모두 학생 때는 공부와 휴식을 균형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해부학, 근육학 등 예과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정말 기본이 되기 때문에 학교 공부는 충실하게 하는 게 좋아요.” 또 학교 다니면서 좋은 점이라면 방학이 있다는 것이므로 방학 시간도 잘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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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국스토리 강은정 루게릭 리본.jpg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김성철 교수님, 차은혜 선생님, 이성진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진료로 바쁘신 와중에도 짬을 내서 성심성의껏 인터뷰를 해주시고 진료 모습까지 꼼꼼하게 담아내도록 챙겨주신 교수님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두 선생님들 덕분에 생생한 수련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은 항상 열려있다. 교수님이 강조하신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마음’만 잊지 않는다면 어느 길을 가든 값진 선택을 했다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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