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의 브레인, 뇌과학에 빠지다
 
KYJ01-01 2.jpg

2013년 4월 2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BRAIN initiative’ 계획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차세대 R&D 분야에서 세계는 ‘뇌과학’에 주목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하버드 의대 마르티노스 바이오메디컬 이미징센터 (The Athinoula A. Martinos Center for Biomedical Imaging)에서는 뇌영상으로 침구 치료의 기전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국내 학계에서도 뇌과학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은데요, 이에 KMCRIC 의국스토리 기자로서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과학과 신경생리학교실에서 박사과정 중이신 정지훈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어떻게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과학과 생리학교실 대학원에 오게 되셨나요?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하고 여러 연구실들을 조사해 보았는데, 이 연구실의 연구 주제가 제 관심사와 맞닿아 있기도 하였고 연구 환경도 좋아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실을 알아보면서 해당 실험실 및 주변 분들의 의견도 들어 보았는데,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잠깐 한의사로 일하면서 저의 창의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보람도 있는 직업임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환자를 아무리 고쳐도 내일 또 아픈 사람은 생기게 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꼈습니다. 때문에 작은 보탬일지라도 인류 지식의 진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연구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생리학교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생리학은 생명체의 기능을 연구하는 것을 공통점으로 해서 근골격계, 심장순환계, 호흡기계 연구 등 다양한 계열이 있습니다. 생리학교실 내에서도 신경생리, 세포생리, 심장근, 평활근, 단백질전사조절, 신경바이오이미징 등 연구주제에 따라 다양한 연구실들이 있는데, 저희 연구실은 그중에서 신경생리학 연구실 (Neurophysiology Lab)입니다. 주로 뇌를 연구하지요. 저희 연구실의 큰 주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학습과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 지각 및 통증’ 입니다.


KYJ01-03.jpg

circle check 1818 2.jpg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병리적 통증 중의 하나인 신경병증성 통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동물 모델을 사용하여 신경병성 통증 상태에서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연구하지요.

통증은 생리적 통증과 병리적 통증으로 나뉩니다. 생리적 통증은 조직 손상에 대한 경고로 정상적인 생존 반응이지만, 병리적 통증은 손상에서 회복되고도 남아있는 비정상적인 감각장애입니다. 만성 신경병성 통증은 기전이 완전히 알려져 있지 않아 대부분의 경우 잘 치료되지 않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대처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자살률도 높습니다. 이러한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계의 변화는 비가역적인 것이 아니며, 연구를 통하여 통증 상태에서 비통증 상태로 회복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한의대 대학원과의 차이점이나 이 교실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한의과대학 연구실의 경우도 연구 방법론과 연구 체계는 의대 연구실과 비슷합니다. 차이점이라면 한의대 연구실에서 다루는 연구 주제들이 좀 더 한의학적 관심사와 가깝다는 점일 것입니다.

저희 연구실만의 장점은 연구 환경입니다. 나름 규모도 있고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행동실험, 전기생리, 뇌영상기법 등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연구 기법들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이 연구실에서 할 수 없는 실험의 경우 주변 다른 큰 연구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높은 자율성이 요구되기는 하나,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여 수준 높은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도 좋은 점입니다. 선생님들끼리 사이가 좋고, 재밌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이는 연구에 관한 토론을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며,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확장하기에 좋습니다.

또한,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김선광 교수님과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기도 합니다. 김 교수님은 일본에서 two-photon microscopy라는 첨단 장비로 연구하신 전문가이신데, 마침 저희 연구실과 인연이 닿아 교수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가르쳐주시고 연구 교류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다양한 전공의 선생님들이 함께 연구하고 계신데, 한의대 학부 때 배운 내용과 연결되는 점이 있을까요?


a->b->c 라는 현상이 선형적 관계를 넘어서 다른 feedback, feedfoward한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다중 상호작용적인 생각에 익숙했던 것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한의대를 다닌 6년간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연구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경제적 수입은 로컬에 있는 것보다 적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므로 개원 한의사가 되기를 기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셀프 모티베이션이 되는 사람이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셀프 모티베이션 (self motivation)이란 지식이 쌓이는 것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고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계속 전진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관심이 있다면 주변 교수님들께 연락하여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이런 길이 있는 줄 모르거나 알더라도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의지가 있다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제게 연락주셔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셔도 됩니다. 막연한 관심만 있고 궁금한 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상태이더라도 괜찮습니다. 부담 없이 메일로 연락 주세요. (geehoon.chung@brain.snu.ac.kr)

학생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한의계에서도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학계의 경우 의전원에서 운영하는 MD-PhD 제도도 있고, 의사 면허 취득 이후 전공의 수련 대신 기초의학 전공을 택하는 이에게 전공의에 준한 대우를 해주는 기초의학전공의 제도도 있습니다. 또 서울대 의대 의과학과 같은 경우 학부생들에게 실험실 경험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학생 인턴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는 것도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정서적 지지도 중요한데요, ‘한의대 나와서 왜 임상에 나가지 않느냐’, ‘왜 한의대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연구를 하고 있느냐’하는 짧은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YJ01-04.jpg

circle check 1818 2.jpg 앞으로도 계속 통증에 관한 연구를 하실 계획이신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심이 가고, 저의 창의력을 쏟을 만한 분야라면 어떤 것이든 좋다고 생각합니다. 학습, 기억, 통증 등 행동 수준에서는 다르게 보이는 현상들도 그 가소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기전을 연구해 보면 많은 부분이 겹쳐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연구에서 얼마든지 다른 분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 공격성, 공감능력 등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한의사로서 잠깐 임상에 있을 때 사용하였던 한의학적 기법들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있습니다. 한의학적 기법들이 발휘하는 효과 및 기전에 대한 연구도 앞으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지금 연구에서 사용하시는 약리 물질들을 한의약 물질로 도치한 연구들도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하나의 본초에서 추출한 단일 및 복합 성분들의 작용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여러 본초들을 복합 사용하였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내는 기전에 대한 연구들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경계에 작용하는 한의약 물질에 대한 연구도 앞으로 많이 수행될 것이라고 봅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연구하시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어떤 것인가요?


연구 설계 단계에서 과정이나 결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실험했을 때 진짜로 생각했던 대로 되면 스스로 기특함과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데이터를 잘 쌓아서 학회에 가서 발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처럼 이 연구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제가 몰랐던 가능성을 공유하는 과정은 또 무척 흥분되는 일입니다.


circle check 1818 2.jpg 박사과정을 졸업한 후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요?


일반적으로는 포닥(박사 후 과정, Post-doctoral researcher)을 하는데 외국 연구실로도 많이 나갑니다. 바로 포닥을 가는 경우도 있고, 연구실에 남아 자신이 하던 연구를 마무리하고 나가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는, 연구소 등에서 자리를 잡기도 하고, 교수로 임용되어 자신의 연구실을 차리게 되기도 합니다.


KYJ01-05.jpg


인터뷰 후

한의대 내에서도 연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자연과학, 공과대학에 비해 연구원으로의 진로에 대한 접근이 어렵지만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개척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이 있어 후배들의 든든한 멘토가 되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큰 도움을 주신 정지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의국스토리 여자 명찰.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