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침 연구를 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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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하면 바로 떠오르기 마련인 침. 그런데 침은 어째서 효과가 있는 걸까? 또 왜 경혈이나 경락별로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걸까? 침에 대한 이런 오랜 궁금증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경희대학교 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 (Acupuncture and Meridian Science Research Center, AMSRC)의 소장님이신 박히준 교수님 그리고 박지연, 정원모, 김서연 세 연구원 선생님과 함께 AMSRC 소개와 침 연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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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 소개 by 박히준 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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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는 한의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침구경락분야의 과학적 학문기반을 마련하여 차세대 의료산업에 일조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2005년 국가지정 우수연구센터로 현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으로 계시는 이혜정 교수님의 주도하에 설립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개소 10주년을 맞아 다가오는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고 미래형 연구센터로 거듭나기 위해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AMCRC)’로 이름을 변경하였습니다. 저는 미래의학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늘 인간 중심의 한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미래의학을 위해서는 한의학의 풍부한 임상 경험과 함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큼 충분한 과학적 데이터와 임상 근거 마련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센터는 한의학 전공자뿐 아니라, 신경과학, 면역학, 정보공학, 인지과학, 뇌영상, 한의임상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님들과 연구진들이 함께 손잡고 침구경락분야의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센터는 기초 연구가 임상에 적용되고, 임상의 궁금증을 연구를 통해 해결하는 선순환 발전방안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모든 연구는 한의학 발전과 국민 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구체적 연구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구방법론이 적용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목표, 즉, 국민 건강 향상에 기여하는 (임상적+과학적) 근거기반 한의학을 만들기 위해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의학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연구라는 도구를 통해 미래한의학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인터뷰 with 박지연, 정원모, 김서연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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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small people 1.jpg 박지연(이하 박): 저는 경희대 한의대 03학번이고 AMSRC (Acupuncture and Meridian Science Research Center, AMSRC)에서 석사, 박사과정 후 지금은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small people 2.jpg 정원모(이하 정): 경희대 06학번 졸업 후, 고려대 뇌공학과 석사과정으로 잠시 외도를 한 후에(웃음) AMSRC에서 경혈학 과정으로 박사과정 중입니다.


small people 3.jpg 김서연(이하 김): 대전대 08학번 졸업 후 첫 1년 동안은 한의원에서 진료를 보다가 작년 12월부터 연구원으로 들어와서 다음 학기부터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입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게 된 것은 언제, 어떤 계기 때문인가요? 또 경혈학 전공을 한 이유는?


small people 1.jpg 박: 학생 때 수업을 들으면서 약간 답답함도 느끼고 이해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많았어요. 특히 다양한 질환에 한약과 침의 치료 효과가 좋다고 배우잖아요. 그때 ‘침이나 한약은 어떻게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걸까?’,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수업만으로는 정보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의문들을 연구를 통해 밝히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어요.
그 후에 전공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한의학 하면 ‘침’이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효과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것 또한 침이기 때문에 ‘침의 치료 효과와 그 기전을 밝히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경혈학 교실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small people 3.jpg 김: 대부분의 한의대 학부생들이 그렇듯이 저도 한의대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임상의가 되고 싶었고, 또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한의학에 미지의 영역이 많다 보니 한의학을 배울수록 오히려 연구 쪽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하지만 막상 연구를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졸업 후에는 우선 임상을 단기적으로 많이 하면서 전국의 다양한 한의원에서 일 해보았는데, 그 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임상에서의 침의 비중이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한의원마다 사용하는 침법이 매우 다양했는데, 신기하게도 치료율이나 환자들의 반응이 엇비슷하게 좋더라고요. 이러한 임상 경험을 계기로 만약 연구를 한다면 침 관련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서 AMSRC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small people 2.jpg 정: 여러 차례 계기가 있었는데, 첫 번째 계기는 학부생 때 중국으로 간 연수 때였어요. 위기의식을 느꼈죠. 사실 연수 전까지는 임상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국에 가보니 중국은 뭔가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았고, 이대로라면 한의학이 국제적으로 설 자리를 잃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때 연구 쪽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 후에 본과 3학년 여름방학 때 AMSRC에서 학부생으로 연구에 참여하게 되면서 연구하는 곳이 어떻다는 것을 느꼈고, 결정적으로 본과 4학년 때 ‘한의틔움’이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보면서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때 한의학 외에 다른 것을 배우는 것, 특히 공학이나 프로그래밍 쪽에 재미를 느꼈고, 다른 학문을 적용하는 것이 한의계와 한의학 연구에 도움이 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야도 함께 공부하면서 한의학 연구를 해보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침에 대해서는 학부생 때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침 임상 연구들을 보면 플라시보에 비해서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연구들이 있는데 저는 이런 연구에 반발심을 가졌지만 솔직히 반박하기는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계속 의문을 가지다 보니 침의 기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뇌과학과 관련하여 침의 기전을 생각해보고 싶어서 침 연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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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SRC 소개와 자랑을 부탁드릴게요.


small people 2.jpg 정: 한의학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은 학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방병원 등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 AMSRC는 침 연구 쪽에서 가장 전문화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모든 교수님들이 정말 좋으신데,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하시지만 그 이전에 연구에 있어서 매우 열정적이시고 사고가 깨어있으신 부분이 좋아요. 각자 침에 대해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고 계셔서 그런 부분에서 많이 도움을 받고 배우고 연구해나가고 있습니다.

small people 1.jpg 박: 학부생 때는 연구소나 센터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 사실 잘 몰랐는데, 경혈학 강의를 하시는 박히준 교수님의 열정 넘치시는 모습을 보고 좋은 이미지를 받았었어요. 그리고 이혜정 교수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의학에 대한 확신과 열정, 사명감을 가지고 실험 연구를 선도해 가시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실제로 들어와 보니까 센터에 경혈학 교수님만 계신 것이 아니라 다른 전공의 교수님이나 학생들도 많더라고요. 센터가 여러 학문 분야가 융합되어서 연구를 하고 있는 큰 집단이다 보니 한의학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 분야(생명공학, 뇌신경과학 등)에 대해서도 대학원 수업을 통해 폭넓고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또한, 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AMSRC)는 2005년 한국연구재단 우수연구센터(SRC)사업에 선정되어 시작되었는데, 한의학 분야 최초의 우수연구센터인 만큼 실험, 교육, 연구 환경이 한의계 내에서는 상당히 좋은 편이에요. 실험에 필요한 설비나 연구 환경이 잘 갖춰져 있고, 이를 기반으로 우수한 연구 성과물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것 또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가 연구비 지원은 종료된 상태이지만, 후속 과제로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를 수주하는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며 활발한 성장을 계속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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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SRC 에는 어떤 수업들이 있나요?


small people 1.jpg 박: 한의학 전공 교수님들은 한의학에 관련된 부분을 주로 많이 강의하시고, 다른 분야의 책 하나를 정한 후 발제해서 함께 공부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각 교수님의 연구 주제에 따라 신경생리학, 인지과학이나 뇌공학 관련 주제로 진행하시기도 하고, 최근에는 사암침 관련 서적으로 그룹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학부 수업과 다르게 대학원 수업은 인원 규모도 적고, 강의 형식보다는 발표 형태나 그룹스터디 형식으로 많이 진행되기 때문에, 연구와 관련하여 교수님들이 관심 있는 연구 분야를 같이 공부해나가기도 하고, 최근 연구 트렌드를 같이 리뷰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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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나거나 보람 있었던 연구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small people 2.jpg 정: 최근 신체 부위에 침 등의 실질적인 자극을 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집중했을 때의 뇌에서의 반응이 침 자극을 실제로 했을 때의 반응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요, 사실 이 연구는 왜 침에 대해서 제가 관심이 생겼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연구고, 학부생 때부터 하고 싶었던 연구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습니다.

small people 1.jpg 박: 아무래도 가장 공을 오래 들인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석사학위 주제로 발표했던 연구인데, 실제로 논문 투고는 박사과정 중간에 마무리되었어요.
저는 항상 침이 효과를 나타내는 이유가 궁금했었고, 이런 부분을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지 연구방법론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고민 끝에 침 자극이 시작되는 부위인, 자침 국소 피부부위에서 나타나는 생리학적·생물학적 변화가 침의 치료 효과를 야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었습니다.
당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피부에서 나타나는 이런 변화들이 단순히 물리적 자극에 의한 피부변화가 아닐까?’, ‘이 변화들이 정말 치료 효과와 관련되는 것일까?’라는 것이었어요. 이 부분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교수님과 함께 고민한 결과, 질환모델과 연계하여 검증했고, 결과적으로 침 자극이 단순한 물리적 자극뿐만 아니라 치료 효과를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던 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밝히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연구였습니다. 연구가 길어져서 중간에 힘든 일도 많았지만, 결국엔 좋은 저널에 잘 게재되어서 보람이 더 컸던 연구였습니다.


연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또 어떤 학생들에게 연구를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small people 3.jpg 김: 저는 연구라고 해서 실험실에서 가운 입고 실험하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연구의 폭이 매우 넓다는 것에 대해 많이 놀랐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주로 설문지 개발과 같은,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생각하는 연구와는 조금 다른 일들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하고 있죠. 거의 사무직이에요(웃음).
연구의 영역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학부생들도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혹시 지금 스스로 연구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나중에 본인에게 잘 맞는 연구 분야를 만날 수도 있는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small people 1.jpg 박: 저는 학부 때는 한의학을 실험으로 증명한다고 하는 것이 잘 와 닿지 않았어요. 한의학은 임상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동물 실험을 통해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연구를 하려고 공부하다 보니,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전 연구가 함께 되어야 침의 임상 효과에 대해서도 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명확한 기전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동물 실험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고요. 그래서 실험 연구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생물학 이론이나 신경생리학적 기초가 많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사실 석사 때는 한의학보다는 신경생리학 기초를 열심히 공부했었어요.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하자면, 일단 저희 센터에는 다양한 분야의 교수님들이 많으셔서 실험연구뿐 아니라, 임상 중개연구, 리뷰 연구나 설문지 개발 등 다양한 연구 분야를 접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연구에 호기심이 있고, 꾸준히 지속해갈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의학에는 연구가 필요한 분야가 아주 많아요. 저는 한의학이 치료 효과에 비해 근거가 너무 마련이 안 되어 있어서 평가절하 받고 있는 면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또 기회가 된다면 연구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small people 2.jpg 정: 다른 점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기가 어려워요. 저는 AMSRC뿐 아니라 다른 연구소에도 있어 봤는데, 연구 생활은 랩의 연구주제나 환경에 따라 매우 달라지기 때문에 딱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다음 질문을 생각해보면, 저는 가끔 ‘만약 내가 임상을 했다면 좀 지루해하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임상은 단기적으로 치료 목표를 이루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데, 저는 그런 생활보다는 장기적이고 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중간에 생기는 장애물을 해결해나가고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하고 적용하는 것이 더 흥미롭고 다이내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같이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연구를 추천하고 싶어요.


석사/박사/박사후과정은 어떻게 다른가요?


small people 1.jpg 박: 학위과정을 계속 지속한다면, 석사/박사/박사후과정이 명확히 나누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처음에 석사과정에 들어오게 되면 바로 연구를 계획하고 주도하기보다는, 우선 실험방법, 연구 설계과정, 논문 작성법 등을 배우게 됩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이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보다 주도적으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데, 물론 책임감도 커지지만, 연구에 대한 재미를 더 느낄 수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박사후과정은 아무래도 ‘박사’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좀 더 많아져요. 석사, 박사과정 후배들이 들어오면 실험방법이나 논문 쓰는 법 등을 가르쳐주거나 연구에 전반적으로 관여해서 지도해주기도 하고요. 연구 기획에도 많이 참여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연차가 올라갈수록 연구를 기획하고, 연구과정을 주도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지죠. 연구과제 수주에도 많이 참여하게 되고요.


제 주위 친구들만 해도 침의 작용기전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플라시보 효과를 제외한 효과에 대해서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고, 경락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침의 효과에 대해서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small people 2.jpg 정: 침의 작용기전에 대해서 제가 요새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과 관련지어 말씀드리자면, 저는 침이 몸과 관련 있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플라시보 효과가 큰 것의 다른 예를 들자면 플라시보 수술이 있는데, 플라시보 약을 먹는 것과는 다르게 플라시보 침이나 플라시보 수술은 몸이랑 관련되어 있어서 어떤 신체 부위에 대해서 생각하게끔 해요. 그러니까 body awareness, 즉 자기 몸에 대해서 인식하게 하는 자극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부분이 침이 다른 플라시보 intervention들과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맥락 어딘가에 침의 숨어있는 기전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람 있게 생각했던 연구도 그런 연구였고, 신체의 어떤 부위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과 자침이 여러 공통적인 반응을 유발한다는 결론이 났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small people 1.jpg 박: 침의 기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한의대생은 아마 없을 거예요. 침 기전은 아직 명확하게 모든 것이 밝혀져 있지는 않고, 여러 시스템(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 등)을 통한 기전으로 각각 연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침의 치료 효과에는 모든 시스템이 다 관여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침이 양약처럼 특정 타겟을 목표로 하는 치료기술이 아니고, 인체 시스템의 불균형을 균형적으로 조절(인체의 항상성을 조절)해줌으로써 치료 효과를 나타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 질환 양상에 따라 신경 또는 면역 또는 내분비계 등으로, 또 어떨 때는 각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관여하기도 하는 거죠. 저는 어떻게 보면 이렇게 작용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침의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 침은 결국 신경자극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연구를 실제로 해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침은 신경뿐 아니라 여러 시스템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거든요. 이런 것을 보면 침이 인체의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조절 trigger의 역할, 다시 말하자면 몸이 스스로 회복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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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진로 선택에 있어 연구를 고민하는 학부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small people 2.jpg 정: 어떤 관심 있는 주제가 있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열심히 고민하고 해결을 해보려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구 쪽으로 오게 되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small people 3.jpg 김: 다들 진로에 관한 고민이 많을 테고, 특히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연구와 임상의 길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할 텐데, 너무 별개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임상에서의 경험이 연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연구 경험이 임상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저만 해도 임상에서의 경험이 지금 하고 있는 연구의 설계나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한 우물만을 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무엇이든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요.

small people 1.jpg 박: 일단은 본인이 밝히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연구를 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진로 결정 시점에서, 로컬, 수련의 과정, 대학원 과정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 당시 저는 침 치료의 기전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임상에서 진료를 할 때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를 통해 스스로 근거를 정립해 놓으면, 보다 더 확신을 가지고 치료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또 임상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점도 결정에 영향을 끼쳤죠. 하고 싶은 것을 우선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다양한 연구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중에 임상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한편으로 저는 각각의 한의사들이 모두 개인 연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로컬에서도 충분히 증례보고 등을 낼 수 있는 연구역량이 있지만, 연구방법론이나 논문 투고 과정 등을 잘 몰라서 못하고 있는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 연구 경력이 임상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또 임상 근거를 마련해 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점은, 저희 센터를 비롯해서 침 연구계에는 한의학 전공이 아니신 분들도 많아요. 물론 여러 학문의 도움도 많이 필요하지만, 한의학의 강점을 살리고, 한의학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하려면 한의학 전공자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의학 전공자들이 연구에 더 많은 관심과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고,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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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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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한의학 이론이나 임상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지만, 정작 의문을 갖는 만큼 연구에 뜻을 두는 학생은 많지 않다. 연구가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연구와 임상은 완전히 다른 길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AMSRC의 선생님들과 인터뷰하면서 사실 내가 생각했던 연구는 정말 좁은 의미의 단어였고, 연구자에게도 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임상의에게도 연구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가진 궁금증을 풀어나가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고민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과 좋은 환경의 센터를 보니 연구, 인류의 지식이라는 바다에 작은 물방울 하나를 더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는 이 일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AMSRC를 잘 소개해주시고 인터뷰를 도와주신 박히준 소장님과 박지연 박사님, 정원모, 김서연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연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주신 점 역시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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