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과 한의학의 접점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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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갠 하늘에 따뜻한 햇볕까지.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센트럴파크에서 인터뷰라니. 벤치에서 떨린 가슴을 붙잡고 질문지를 무한 반복 읽으며 기다리다 저 멀리서 웃는 얼굴로 두 손 가득 간식을 들고 오시는 남희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펼친 뒤 잘 익은 수박과 직접 만드신 김밥을 맛있게 먹으며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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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하루 일정을 간략하게 알려주세요.


2013년부터 뉴욕시립대학교 (The City University of New York, CUNY)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대학원 캠퍼스에 가서 연구에 필요한 일을 합니다. 문헌 조사를 하면서 관련 자료를 읽고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정리하며 지도 교수님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학부 수업 강의를 하는데 그에 필요한 준비와 리딩 (reading)에 시간을 꽤 할애해요. 토론식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질문을 만들고 대화를 끌어가기 위한 장치를 구상하려고 노력하죠.


Q2. Hunter College, CUNY에서 어떤 주제로 강의하시나요?


인류학 개론에 해당하는 수업으로 인류학의 주요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Q3. 지금 하시는 일을 한 단어로 비유한다면?


‘뉴욕’입니다. 뉴욕은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꿈을 이루고자 분주하게 살아가는 곳이잖아요. 하지만 치열한 생존 감각을 일깨워주는 곳이기도 하죠. 제가 하는 일도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가운데 한의학과 인류학의 접점을 그리는 일이라고 볼 수 있죠.


Q4. The Graduate Center, CUNY에서 보내는 리얼 유학 라이프를 들려주세요!


맨해튼 (Manhattan)의 심장부에 위치한 대학원에 매일 나가는 일상은 몇 년을 반복해도 특별하게 느껴져요. 뉴욕의 다른 대학과 컨소시엄 (consortium)으로 연결된 프로그램 덕분에 컬럼비아대와 뉴욕대 뉴스쿨 (New School)에 관심 있는 강의가 개설되면 얼마든지 수강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어요.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와 세미나가 개최되어 세계적인 석학이나 유명 인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요. 가끔은 콘크리트 정글에서의 빡빡한 박사과정이 갑갑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5번가 (Fifth Avenue)를 따라 센트럴파크를 향해 걸으며 힐링을 하곤 해요. 여담이지만 그렇게 오가다가 우디 앨런 할아버지도 두 번이나 봤네요.


Q5. 유학 중 포기할 뻔했거나 포기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인류학 세미나는 매일 몇백 페이지의 글을 읽는 건 기본이고 본인이 소화한 내용에 대한 퍼포먼스를 긴 호흡의 글쓰기와 말하기로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러다 보니 많은 양의 리딩 (reading)이 진도가 잘 안 나갈 때나 글이 잘 안 써질 때, 말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을 때 등 매 순간이 좌절이지만 그것 때문에 포기를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요즘 들어 인류학 박사라는 학위 과정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의심이 들 때는 있어요.


Q6.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학부생들이 토론 수업에서 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기존의 사회적 통념에 녹아 있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나 왜곡된 역사 등에 눈뜨는 과정을 지켜볼 때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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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학부 시절을 한 단어로 비유하자면?


‘오늘’입니다. 대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편이었어요. 오늘에 충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학교 공부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노래방도 가며 보냈죠.


Q2. 대학생 때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으셨나요?


한의과대학 진학 전부터 같은 모습을 그려온 것 같아요. 한의학을 알고 바깥세상을 알고 그 간극과 마찰에 대해 연구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천해 보는 것도 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일들이 꼭 임상과 동떨어져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 마디로 연구와 현장과 임상에 대해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았었다고 볼 수 있죠.


Q3. 학부 때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학부 때는 다양한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시기였어요. 우선 예과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국제개발 NGO를 통해 앙골라의 지역보건을 경험해 볼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현지의 의료문화나 맥락이 국제보건에서도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고 한의학을 더 공부해보고 싶어졌어요. 복학 후에 앞으로 한의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KIOM 글로벌 원정대를 비롯한 각종 공모전을 통해 미국 심신의학 연구 및 적용 현장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시스템생물학과 한의학과의 연계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보니 제가 실험실 연구는 적성이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본과 2학년 무렵이었는데 그때부터는 국내 및 국제보건포럼으로 관심을 돌렸죠. 보건의료 NGO, 대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방학마다 해외 의료봉사에 나갔는데 그쪽 분야로 흥미가 깊어지면서 국제보건세미나와 포럼을 계획하는 KOSAG (Korean Students' Association for Global Health)이라는 조직의 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Q4. 학생 때부터 어떤 분야로 나아가실지 확고한 뜻이 있으셨나요?


한의학 전공자로서 창의적인 시도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확실했는데 처음부터 구체적이었던 건 아니에요. 결국 모든 여정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를 추리는 과정이었어요. 이런저런 생각들을 직접 실천해보면서 답을 잘 찾을 수 있었죠. 인류학 유학을 결정하기 전에도 인류학 세미나를 청강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Q5. 예전부터 국제보건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처음부터 국제보건이 무엇인지 알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본래부터 다양한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제3세계 현실을 직접 보고 싶었어요. 여러 경험과 인연을 통해 국제보건이라는 분야에 자연스럽게 눈뜨게 된 것이죠.


Q6. 아프리카 앙골라로 떠날 때 가졌던 비전은 무엇이었나요?


일차적으로는 그곳의 현실이 궁금했어요. 오랜 식민지배로 인한 갈등과 내전, 구조적 빈곤으로 얼룩진 앙골라의 실제 삶은 어떤지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있겠어요? 국제보건이든 원조든 우선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당시 휴학을 하고 앙골라에 갔을 때나 그 뒤로도 줄곧 제 마음의 질문은 하나였던 것 같아요. 국제개발이나 국제보건 분야에서 한의학 전공자로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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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국제보건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많은 동시에 비판의식도 매우 많았어요. 해당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고 토로하는 문제들도 있지만 저는 더 나아가 국제개발이나 국제보건의 본질적인 한계나 구조적 문제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어요. 그래서 보건학에서 통용되는 기술적인 (technical) 시각으로 국제보건에 접근한다는 게 편하지 않았어요. 국제보건에 관련된 일은 하고 싶은데 보건학적 방법론과 철학에서 부족함이 느껴져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죠. 그게 바로 인류학이었어요.


Q2. 인류학과 한의학은 어떤 연관이 있나요?


인류학에는 네 가지 분과 (생물인류학, 고고학, 언어학, 문화인류학)가 있는데 문화인류학이 한의학과 연관이 많아요. 우선 두 학문 모두 타자화가 잘 되는 특징이 있어요. 한의학은 근대화 이래로 외부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재단해왔고 문화인류학도 서구중심주의에 의한 자아성찰의 역사라고 볼 수 있거든요. 예전부터 인류학자들은 한의학과 같은 비서구의학 (non-Western)에 대해 연구를 해왔어요. 다양한 접점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의 큰 줄기는 의학이나 의료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는지 밝히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과학이나 의학 등 절대적인 것으로 알아 왔던 대상에 대해 상대주의적인 프레임을 제시하지요. 한의학 내부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들을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


Q3. 인류학에서는 국제보건을 어떤 시각으로 보나요?


인류학에서는 국제보건을 다양한 맥락에서 바라봐요. 보건사업의 내용과 보건지표의 향상뿐만 아니라 그런 프로그램들이 행해지는 국가의 역사와 지역사회의 세세한 상황까지도 모두 분석에 포함해요. 그리고 보건사업이 해당 사회에 어떤 정치, 경제, 문화적 영향을 끼치는지도 관찰하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을 거시적인 세계 경제체제나 지정학적 상황과도 연결해서 설명해요.


이게 다 무슨 의미냐고요? 보건사업이라고 하면 보통 내용을 채워 넣어서 성공적으로 수행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인류학에서는 수치와 지표 향상이 다가 아니라고 일깨워주는 거죠. 국제보건이란 개념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보건사업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보건학에서 잘 다뤄주고 있어요. 그런데 왜 지금의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원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싶다면 인류학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거죠.


한의학을 대입하면 이해가 더 빠를까요?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어떻게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이죠. 그런데 왜 과학화를 해야 하는지 그것의 함의나 시사점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도 동시에 이뤄져야 하잖아요. 그런 걸 인류학에서 충족을 시켜주죠.


Q4. 보건학에서도 이런 접근을 주로 다루고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는데 보건학에서도 이러한 접근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보건학의 주류를 이루는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한의 연구자가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서 HOW와 WHY 모두를 고찰할 수 있고 그것이 제일 이상적인 것처럼 상호보완이 되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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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국제보건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싶으신가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는 당연히 개입하고 최대한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아주 일반적으로만 말씀을 드릴게요. 국제보건 사업의 한계점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부의 불평등이 빚어지게 되는 역사적인 왜곡과 세계 경제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저소득국의 보건의료의 열악한 상황을 기술적 문제로 접근하는 거예요. 사실 빈곤이나 열악한 보건지표는 정치적인 해법이 동반되어야 하는 문제인데 그것을 탈정치화해서 오로지 더 정교한 보건사업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격이죠.


Q2.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국제보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세계 각지의 전통의학은 국제보건사업의 저해요소라고 인식되고 있어요. 이런 선입견 속에서 한의학 전공자는 해당 지역 고유의 의학 지식과 의료체계가 보건사업의 성공과 보건수준 향상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외부인과 현지인 사이, 중간자적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현지 의료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현지 의료문화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겠지요.


Q3. 아프리카 전통의학이 어떻게 보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보전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보전의 정의는 누가 내릴까요? 보전함으로써 이익을 보게 되는 집단과 손해를 보게 되는 집단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도 생각이 미치나요?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보전일까요?


아프리카 전통의학 대신에 ‘한의학’을 대입해볼게요. 한의학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지식 위주로 보전이 되어야 하나요? 아니면 이를 기초로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한 내용까지 포함해야 하나요? 한의학이 어떻게 보전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은 순수한 학문적 차원에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집단이 있는 만큼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정치적인 사안이 옳다 그르다 여부로만 결론이 나진 않아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아프리카 전통의학을 하나의 뭉뚱그려진 실체는 없지만 여러 형태의 토착의학들을 지칭한다고 했을 때, 저는 그 지식 유산의 소유자들이 보전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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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한의학의 표준화, 과학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표준화, 과학화는 기존의 헤게모니 (hegemony)적 지식 체계에 대해 한의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이에요. 이미 룰이 짜인 게임에서 한의사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거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을 때, 이런 관점에서도 변화 과정을 바라봐야 해요.


아프리카 전통의학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전에는 많은 인류학적 연구가 어떻게 서양의학이 식민지 개척의 도구로서의 그 나라의 토착의학을 밀어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서구 인류학자들의 시각으로 볼 때 사라져가는 토착의학의 모습을 본인들이 생각하는 원형에 가깝게 기록하는 데 몰두했죠. 하지만 요즘에는 토착의료의 주체들이 어떻게 서양의학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서양의학을 현지 맥락에 맞춰 변화시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왔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추세에요.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한의사들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스스로를 정치세력화 (politicization) 해내었다고 볼 수 있죠.


Q2. 한의사로 살면서 느끼는 미국과 한국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한의사라고 말하면 더 이상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죠. 의료이원화 제도와 그것을 빚어낸 역사, 한양방 갈등 상황 등등을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고도 어떻게 하면 한의사의 역할과 역량에 대해 적절하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가 화두입니다.


한의사가 하는 일들을 한국의 특수한 맥락에서 분리해 보편적인 개념으로 해체한 뒤에 현지 의료 맥락에 맞게 재배열을 한다면 저는 integrative medicine physician (통합의학 의사)에 가장 근접한다고 생각해요. 아쉽게도 현 상황에서 한의사는 미국에서 licensed acupuncturist (침구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미국처럼 다원주의적이고 협업을 중시하는 수평적인 의료환경에서 통합의학 의사가 불가능한 포지셔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3. 한의사가 전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살짝 틀어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한의사가 전 세계로 진출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 밖에서는 한의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유학을 하든 국제보건사업을 하든 해외에서 치료행위를 하든 교육행위를 하든 의료비지니스를 하든 한의사라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어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확히 정의되지 않은 직종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의사로서의 메리트를 정말 잘 살리기 위해서는 한의사가 보편적인 개념으로도 이해되고 세계 시스템 안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환이 안 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아무리 좋아도 다른 기계에는 무용지물인 것과 마찬가지죠. 심지어 한의사라는 사실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때도 있어요. 한의과대학에서 받은 학위들이 인정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들도 있고요.


Q4. 선생님께서 인류학 공부를 시작하셨을 때 이런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저는 한의사라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고 동시에 국제보건, 한의학 분야 모두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마침 인류학적 접근이 제가 추구하는 지식의 가치와 맞닿아 있고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주었기에 망설임 없이 인류학을 선택할 수 있었죠. 인류학은 연구자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연구할 때의 장점을 분명히 인지하는 분야거든요.


Q5. 한의사라는 사실이 메리트가 될 수는 없는 걸까요?


충분히 메리트가 될 수 있습니다. 진출 분야나 국가에 따라 한의사를 인정해주는 곳들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다만 예외가 존재한다는 말이었어요. 중요한 점은 한의사로서의 메리트를 본인이 어필할 수 있어야겠죠. 또한 어떤 진로를 개척해가든지 한의사로서 쌓은 통찰 (insight)과 관점 (perspective)을 발휘하는 것은 남들이 인정해주는 차원을 떠나 본인이 계속 함양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Q6. 한의사의 세계 진출을 위해 정책적 측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의사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면 세계 진출의 장벽은 더 높아지게 돼요. 한의사를 한국에만 존재할 수 있는 직종으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시스템 안에서도 통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부상한 국내 한의과대학의 세계의과대학목록 (WDMS) 재등재 문제가 정책적으로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고 봐요. 세계 곳곳의 전통의학대학들도 등재된 상황에서 한의과대학이 목록에서 빠진 건 아무래도 이해가 어려운 것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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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선생님의 Next Step이 궁금합니다!


그건 저도 참 궁금하네요. 결혼과 육아를 거치면서 여성의 자아실현과 가정의 양립에 대해서 인류학적으로 고찰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잠시 휴학을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Q2.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요즘 들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인류학적 통찰의 핵심은 우리가 사는 방식과 믿고 있는 가치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밝히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제가 하는 연구도 서구적 전통 안에서 형성되고 보편화된 의학과 의료 문화를 타자화해서 보려는 건데 이처럼 기존 프레임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시각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믿어요. 하지만 인류학적 연구가 학계를 벗어나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는지는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커요. 인류학적 담론이 사변적이고 이론 위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는데 인문사회과학계를 벗어나면 그 언어가 통용이 잘 안되는 게 큰 문제에요. 학교 밖에서 인류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과도 교류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Q3. 해외 진출이나 인류학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한의대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해외 대학원 진학이라는 것은 시간과 금전 면에서 기회비용이 큰 선택이에요. 그만큼 유학에 생각이 있다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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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니 해가 지면서 주황빛 노을이 잔디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고민 많이 해봐요. 멀리서 응원할게요.”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희선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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