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마다 발하는 氣가 각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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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음악

각각의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연상되시나요?
나이 지긋하신 남자 한의사 선생님이 놔주시는 침? 탕약?
분위기 있는 유려한 클래식, 혹은 젊음의 대명사! 귀를 쨍쨍 울리는 밴드 음악?

기름과 물처럼 전혀 섞일 것 같지 않은 두 분야의 교점을 찾은 곳!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에 다녀왔습니다.



Part 1. 한방음악치료는 내가 세계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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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음악치료는 서양의 음악치료와는 전혀 달라요. 흔히 우리가 아는 음악치료는 심리학자들이 연구한 학문이에요. 자연스레 그 대상이 자폐아, 발달장애아와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환자들인 경우가 많죠. 치료의 목표 또한 자폐아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함이 많고요. 1996-1997년도에 우리나라에 음악치료가 들어왔는데 서양의 음악치료가 내건 목표는 전인치료 (즉, 몸과 마음을 모두 치료한다)였어요. 하지만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치료가 마음은 치료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몸을 치료할 수는 없을 것 같았던 거죠. 진정한 전인치료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에 이전에 졸업논문을 쓸 때 국악의 ‘궁상각치우’가 음악책이 아닌 한의학책에 나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어요. 한의학이라면 몸과 마음을 모두 치료하는 관점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혹시 한의학에 있는 그 ‘궁상각치우’가 진정한 전인치료는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한방음악치료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어요.


혼자 고민하다가 한의학전공이 아닌 제가 (이승현 교수님은 이화여대 음악대학을 졸업하셨다.) 답을 찾기 쉽지 않아서 무작정 경희대학교 원전학교실 박찬국 교수님께 찾아가 이렇게 물었죠. “궁상각치우가 한의학에 있는데, 한의학에 음악치료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깜짝 놀라시면서 아무도 음악 하는 사람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었어요. 알고 보니 교수님께서 학부생 때 오음에 대해서 궁금해서 서울대 음대 국악과를 찾아간 적이 있으셨던 거에요. 어떻게 보면 참 기묘한 연이었어요. 같은 분야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던 분을 만난 게 참 행운이었죠. 그 후에 교수님은 저에게 한의학을 알려주시고, 저는 교수님께 음악을 알려드리며 스터디를 함께 했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후에 한의학 박사과정을 밟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때 한의학에 대해 많이 배웠죠.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한방음악치료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고 사용했지만, 사실 이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물론 저는 논문 쓰고, 연구하고, 누에로 실험까지 하면서 음악치료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확신을 얻었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듯이 한방음악치료의 효과에 대해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졸업하기 직전, “저 졸업합니다.” 하고 졸업논문을 드리러 학장님을 뵈러 갔다가 졸업 후 뭐할 것이냐는 말씀에 제가 지금까지 중풍 환자 치료를 위해 간소화한 피아노를 개발해서 특허받고, 색건반요법을 만드는 등 이런 준비를 해왔고, 나아가 한의학 커리큘럼 안에 한방음악치료 관련 학과를 만들고, 예를 들어 로컬에서 이런 환자는 이렇게 치료했으면 좋겠고 이런 제 생각을 줄줄 말씀드렸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안부를 묻는 말이셨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웃음). 학장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총장님께 보고할 수 있게 되고, 바로 그 해 교육대학원 내 한방음악치료 지도자과정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방음악치료를 알리고 학회 가서 발표하고 하다 보니 기회가 되어 2005년에 강동경희대학교병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한방음악치료센터가 지금의 이곳이에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기회가 오기 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하신 모습은 듣는 저희에게도,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도 큰 감명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방음악치료란 무엇일까요?

 


Part 2. 한방음악치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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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표현방법에 대한 분류가 오행으로 되어있는데, 정말 음악이 발하는 기운 자체가 그 영향을 줘요. 흔히들 오해하는 것이 한방음악치료니까 국악만 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서양 음악도 다 오행으로 분류해놓았거든요. 하이든, 모차르트 등 작곡가들의 노래 중에서도 곡에 따라 표현기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오행의 기운을 발하는 부분만을 발췌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같은 암환자라도 치료 시 서양음악을 주는 사람과 국악을 주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은 국악, 젊은 사람은 서양음악을 주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사실과 다르고요 (웃음). 외국인들이 체험하러 올 때도 무조건 국악이나 서양음악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장구를 치게 하기도 하고 서양 악기인 마라카스를 흔들게 하기도 하죠.


한방음악치료센터를 주로 찾는 환자들은?


우선 중풍 환자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중풍 환자 중에서도 꼭 뇌경색, 뇌출혈이 아니더라도 신경이상증 환자들이 많아요. 대표적으로 파킨슨증후군 환자들이 많이 오시죠. 그리고 한방암센터의 정규 치료 프로그램 안에 한방음악치료가 포함되면서 암환자 분들도 많이 오세요. 그 외에도 소화기장애나 부인과 환자, 주로 이러한 환자분들이 한방음악치료를 받으러 오시죠.


안타깝게도 한방음악치료센터 이용은 담당 교수님들의 진료 의뢰에 의해서만 가능해요. 저는 상담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들과 첫 만남을 갖게 되고요. 맥진을 통해 한의학적 변증을 한 뒤에 환자 몸의 기질, 상태를 판단하고 17가지 한방음악치료요법 중에서 어떤 요법을 시행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진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한, 열, 허, 실을 구분하는 거예요. 이에 따라 투여되는 음악이나 악기가 달라지니까요. 


상담이 끝나면 치료실로 이동하여 한방음악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한방음악치료는 단순히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환자분들이 직접 악기를 다루면서 치료가 진행되기 때문에 치료를 처음 하게 되면 한두 회는 악기를 익히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죠. 악기는 몸이 불편하거나 생전 악기를 만져보지 못한 분들도 다룰 수 있는 악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환자의 증상에 따라서 악기는 두세 가지로 한정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도 변화를 시켜서 주게 되죠.


맥진을 통한 한의학적 ‘진단’을 하고 음악을 ‘처방’하는 한방음악치료센터.
한의학 공부를 하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



이승현 교수님께서는 모든 환자를 두세 번 치료 시 한 번 이상은 꼭 만나보신다고 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환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볼 수 있었는데요. 한방음악치료요법 중에서도 가장 많은 환자들이 받는 요법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요법은 해울 음악요법이에요. 부인과나 암환자, 뇌경색 환자에게 두루 씁니다. 그리고 해울 음악은 질병에 따라서가 아니라 해울 음악 자체로써 각 질병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요. 환자들뿐 아니라 병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해울 음악이 좋은데, 병원에서 직무수행 관련 특강할 때 원내 직원들에게 했더니 아주 인기가 좋았어요 (웃음). 한방음악치료는 병이 나기 이전에 양생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를 해요. 치미병(治未病)의 개념이죠.

 


Part 3. 세계에서도 주목한 한방음악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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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중증 질환들을 치료한다는 개념은, 모르는 사람들이 언뜻 듣기에는 약간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방음악치료는 환자들의 마음 상태를 조절함으로써 치료 속도를 높인다고 합니다.


사람의 감정, 그중에서도 칠정(七情)은 한의학에서 모든 병을 일으키는 내인(內因)이거든요. 암환자만 칠정이 문제가 아니라. 중풍, 부인과 질환의 자궁근종이나 자궁유착, 자궁내막증 등도 대부분 기혈순환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들어가 보면 분노라든지, 우울, 슬픔 등의 감정이 있거든요. 따라서 칠정(七情)을 잘 다스리는 것이 그 병의 근본치료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방음악치료가 몸과 마음을 모두 조절해줄 수 있는 새로운 치료수단으로서 앞으로 더 많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제가 아무리 좋다고 말하더라도 환자들에게는 질병이 호전된 임상적인 데이터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중풍에서는 뇌경색 환자의 brain SPECT를 통해 한방음악치료로 뇌 혈류 흐름 등이 호전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침과 약만으로 치료한 환자군, 그리고 침과 약과 더불어 한방음악치료를 10회 병행한 뇌경색 환자의 한 달 뒤 brain SPECT 결과 호전율이 각각 25%와 80%로 나타났어요. 뇌경색이 한 달 안에 낫기 힘든 질병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침과 약도 분명 효과가 있었지만 한방음악치료를 겸했을 때 더 빨리 호전된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이었죠. 한방음악치료를 전후로 fMRI 상에서 뇌의 기능 활성화를 다룬 논문도 썼어요. 그런 부분에서 한방음악치료의 효능이 입증되니까요.


이제는 교수님들도 어느 정도 인정해주시고 계세요. 만성피로 환자군에 대한 치험례도 SCI급 논문에 기재되어 있고, 혈액암 환자의 경우도 한방음악치료를 통해서 백혈구나 호중구 수치에 유의미한 증가가 있었어요. 얼마 전에는 세계음악치료학회에 한방음악치료 분야에서 최초로 초청되어 한방음악치료의 효과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혈액암 환자에 대한 임상연구 결과를 발표해 참석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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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목표나 바람이 있으시다면?


저는 한의사라면 한의학적 치료수단으로 한방음악치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다 같이 한의대를 졸업해도 각자 다양한 분야로 나가잖아요. 한의사의 치료영역을 넓히는 것뿐만 아니라 치료수단의 영역을 넓히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한의학의 치료수단이 주로 침과 약에 한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 두 가지 수단 외에도 질병 치료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치료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중 하나가 한방음악치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그래서 전공선택제가 아닌 정규 교육과정에 한방음악치료학이 하나의 과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몇 년 전에는 한방음악치료학이 전공선택과목 중 하나로 있었어요. 그런데 전공선택과목은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에 한해서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동시에 다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한방음악치료를 접할 기회가 아예 없어지는 거잖아요. 학생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과목으로 한방음악치료학이 개설되어서 관심 있는 학생들이 한방음악치료를 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근 강동구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등록되면서부터는 한방음악치료를 체험하기 위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온 어린이 손님들이 부쩍 많아져서 벌써 올해 상반기에만 한방음악치료센터를 다녀간 사람들이 500명이 넘었다고 하네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가능성을 보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분야에 뛰어드신 이승현 교수님. 이런 분들이 있기에 한의학의 발전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음악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면 한방음악치료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훌륭한 치료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는 한방음악치료. 그 무궁무진한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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